
뮤지컬 영화 '위키드: 포 굿'은 전편에 이어 엘파바와 글린다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선과 악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화려한 영상미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으로 완성된 이 작품은 단순한 판타지를 넘어 억압과 저항, 우정과 희생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편이 전작만큼 시각적 효과가 풍성해 눈을 뗄 수 없었고, 엘파바와 글린다의 아름다운 우정 이야기가 특히 감명 깊었습니다.
선악 구조, 경계를 허무는 캐릭터 성장
위키드 포 굿에서 가장 인상적인 요소는 엘파바와 글린다가 보여주는 성장의 흐름입니다. 영화는 오즈의 시민들이 사악한 서쪽 마녀로 알려진 엘파바의 죽음을 기뻐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글린다는 오즈의 상징적인 존재로서 사람들의 분위기를 밝히지만, 그것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입니다. 엘파바는 빗자루를 타고 등장해 동물들을 풀어주며 마법사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흔적을 남깁니다.
영화는 두 인물의 어린 시절을 나란히 보여주며 성장 배경의 차이를 강조합니다. 마법을 잘하지 못해도 사랑받는 글린다와, 뛰어난 능력을 가졌음에도 배척당하는 엘파바의 대비는 재능과 환경, 그리고 사회적 조건의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유일한 진정한 친구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엘파바에게 마음이 많이 갔습니다. 이런 둘의 대조와 비슷한 상황을 어린 시절 주위에서 간혹 볼 수 있었습니다. 열심히 하고 잘하지만 예쁨 받지 못하는 친구와 특별한 재능이 없어도 예쁨 받는 친구가 생각이 났습니다. 특히 두 번째 작품인 이 영화에서 글린다의 내적 변화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 약혼자를 빼앗기고 위협적인 상황에 놓이면서도 결국 선을 선택합니다.
모든 이에게 외면당하고 동생 네사로즈와 피에로마저 잃은 엘파바 역시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습니다. 엘파바는 글린다에게 동물들의 즉각적인 해방과 억압의 중단을 조건으로 오즈로 돌아가자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지하실에서 딜러몬드를 포함한 동물들이 감금된 모습을 목격하고 분노합니다. 이 장면은 글린다의 결혼식 장면과 교차되며 더욱 강렬한 대비를 만들어냅니다. 비슷한 계단 구도 속에서 한쪽은 감옥이고 다른 한쪽은 축복의 공간입니다. 엘파바가 가질 수 있었던 모든 삶을 글린다가 대신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씁쓸하게 다가왔습니다.
오즈의 마법사, 권력의 본질
오즈는 영화 속에서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복합적인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는 절대적으로 선한 존재도, 완전히 악한 존재도 아닌 시대의 산물 같은 인간입니다. 근대에서 살아온 오즈에게 인간 중심의 사고는 자연스러운 가치였습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동물과 자연에 대한 존중이 지금처럼 보편화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는 온화했고 차별 의식도 비교적 적었지만, 동물을 동등한 생명으로 바라보지 않고 통제했습니다. 모리블은 글린다를 오즈의 상징적 아이콘으로 만들기 위해 마법봉과 거품 보호막을 만들어주고, 피에로 왕자를 수비대장으로 앉힌 뒤 약혼을 성사시킵니다. 그러나 엘파바가 갇혀 있던 동물들을 풀어주면서 권력의 질서는 빠르게 흔들립니다. 피에로가 마법사 앞에서 총을 겨누며 엘파바와 함께 떠나겠다고 선언하는 순간은 서사의 큰 분기점이 됩니다. 오즈는 인간의 욕망과 심리를 읽어내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이는 ‘Wonderful’이라는 노래 속 가사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뮤지컬과 영화 버전을 비교하면 그의 사고방식이 더욱 또렷해집니다. 그는 자신의 선택이 결국 선한 결과로 이어진다고 믿었고, 이러한 확신은 글린다와도 닮아 있습니다. 하지만 어두운 일들을 계획하고 실행한 인물이 마담 모리블이었다는 점에서 오즈는 겉으로만 권력을 쥔 존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네사로즈가 위험에 빠졌을 때 모리블이 기후를 조종해 집을 떨어뜨린 사건, 엘파바를 몰아붙이는 마녀사냥의 시작, 그리고 엘파바가 자신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모든 것을 내려놓는 오즈의 모습까지, 그는 시대가 요구한 독재자이자 정치인의 얼굴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에 열기구를 타고 사라지는 장면은 억압의 시대가 끝나고 공존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저는 오즈를 보며 현실이 떠올랐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오즈와 같은 사람이 있죠. 권력을 쥐었을 때 사람의 본성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을 토대로, '내가 어느 공동체에서 리더가 된다면, 그 권력을 악을 향해 휘두르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 정의와 저항의 메시지
위키드 포 굿이 전하는 중심 메시지는 사회 정의와 부당함에 맞서는 저항입니다. 영화는 시작부터 낮은 계층에 속한 동물들이 강제로 노동에 동원되어 권력 확장의 상징인 노란 벽돌길을 깔게 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이는 전통적인 억압 구조를 통해 작품 전반에 어두운 분위기를 형성합니다. 에메랄드 시티를 둘러싼 거대한 성벽은 외부의 위협을 막는 방어막이자 시민들을 안에 가두어 현실을 보지 못하게 하는 장치입니다. 오즈는 엘파바라는 사악한 마녀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듯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실체와 정책이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시민들을 철저히 통제합니다. 노란 벽돌길이 완성되며 “어디든 오즈에게로 갈 수 있어요”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이는 겉보기와 달리 오즈가 언제든 반대 세력을 진압하러 이동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됩니다.
영화 속에서 “어쩌다 오즈가 이렇게 변했는가”라는 질문이 던져지지만, 그 책임은 오즈 한 사람이나 엘파바 한 사람에게만 있지 않습니다. 소수의 권력자가 악행을 저질러도 이를 막는 집단이 없었고, 공동체가 목소리를 내는 일을 멈추고 생각하기를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이상한 권력자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을 묵묵히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저항하지 않는 대중이 있었기에 오즈는 지금의 모습으로 굳어졌습니다.
저는 이런 부분이 현실과 정말 비슷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어느 나라에든 위정자들이 있지만 그들의 잘못을 막기 보다는 그에 동조해 같이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많고, 오히려 국민들은 그를 찬성하는 파와 반대하는 파로 갈려 서로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현실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상황이 정말 씁쓸하게 느껴졌습니다.
글린다는 결국 모리블의 부정을 알게 되고 그녀를 체포하며 실질적인 권력을 쥐게 됩니다. 보통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인물은 기존 권력에 위협이 되어 제거되거나 명성이 무너지기 마련이지만, 글린다는 엘파바라는 공공의 적이 사라진 뒤 오히려 오즈를 몰아내고 새로운 중심인물이 됩니다. 이후 억눌려 있던 동물들을 인간 사회로 다시 불러들이며 진정한 정의를 실현합니다.
영화 제목인 ‘포 굿(For Good)’은 엘파바에게는 진실을 드러내고 억압받는 존재를 구하는 것이 선이며, 글린다에게는 오즈의 세계를 변화시켜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위키드 포 굿은 전편에 이어 화려한 영상미와 배우들의 인상적인 연기로 완성도를 높입니다. 일부 개연성이 아쉬운 부분도 존재하지만, 두 인물의 서사와 감정의 흐름은 관객의 마음을 따뜻하게 울립니다. 어린 관객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의미 있는 작품으로, 선과 악의 경계를 다시 생각하게 하며 우정과 희생의 가치를 되새기게 합니다.